용주골’ 언제까지 둘 것인가.
제 어린 시절 기억 속의 파주는 지금으로서 는 상상도 하지 못할 혼돈과 무질서, 원초적 욕 망이 들끓는 곳이었습니다.
좁은 길에는 사람들로 넘쳐났고, 그 좁은 길을 질주하던 미군 짚 차에서 총을 흔들며 알 수 없는 욕을 뱉어내던 미군들, 노랑머리 짧은 치마차림으로 담배를 피우던 일명 ‘양색시’들, 무 얼 하는지도 모를 수 많은 사람들로 넘쳐났었습니다.
그 수많은 사람들 중에는 군복을 입고 으스대던 신문기자, ‘양색시’들을 잡아 패던 포주, 달 리는 미군 차량에 무작정 올라타 물건을 차 아래로 집어던지고 도망가던 동네 아저씨, 치안 유지보다는 ‘부수입’에 더 열을 올리던 경찰, 미 군부대에서 ‘감원’돼서 길거리를 헤매는 실업자들, 경찰들보다도 더한 권세를 누리며 사람을 개 패듯 패던 방범대원, 6.25 전쟁으로 인해 고향을 등진 ‘삼팔 따라지’를 비롯해 전국 팔도에서 기회를 잡기 위해서 몰려든 사람들 등 온갖 종류의 사람들이 생존을 향한 투쟁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파주 인근에만도 수만 명의 미군과 한국군이 주둔하고 있었으니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감안 해 보면 ‘용주골’ 같은 ‘집창촌’이 생겨나는 것은 당연하기도 했습니다. 파주 여러 곳에 그런 것 이 있었습니다.
제가 어느 정도 성장을 해서 사람들을 만나면 고향이 어디냐고 묻는 과정에서 “파주”라고 답하면 “아! 용주골.” 하면서, ‘용주골’을 다녀왔노라고 자랑스레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보면 저는 죄지은 것처럼 얼굴이 뜨거웠습니다. 그러면서 은근히 파주와 저를 싸잡아서 멸시하는 듯한 표정들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파주의 다른 ‘집창촌’은 이런저런 이유로 현재는 사라지고 없습니다. 하지만 ‘용주골’은 70 년이 넘도록 여전히 건재하고 있습니다. 파주시에서 폐쇄를 위해서 백방으로 노력하고 있지만 그런 노력을 비웃기라도 하듯 아직도 ‘불야성’을 이루고 있습니다.
백번을 양보해서 그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분위기로 인해서 ‘집창촌’이 생겼을 수는 있었 다고 봅니다. 그러나 지금이 어떤 시대이고 사 회 분위기가 어떤데, 존재 그 자체로 엄청난 불 법 덩어리인 ‘집창촌’이 아직도 불야성을 이루고 있습니까?
누군가는 ‘집창촌’이 없어지면 성범죄가 많아지고, 은밀한 형태의 성매매가 더 많아질 것이 라고 말합니다.
‘집창촌’이 없어지면 성범죄가 늘어날 것이라는 증거는 없습니다. 현재 ‘용주골’을 찾는 대부 분의 성 구매자들은 파주가 아닌 외지에서 오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용주골이 없어지 면 그 사람들이 파주까지 원정을 와서 성범죄 를 저지른다는 말입니까? 설령 그들이 파주 사 람이라고 하더라도 성 구매를 못하면 곧바로 성범죄자가 될 것이라는 예단 역시 무리가 있 습니다. 또한 은밀한 형태의 성매매 문제는 개인의 선택 문제입니다.
‘용주골’은 성매매가 불법이라는 엄연한 현실을 비웃고, 지역 주민들에게 불쾌감과 자괴감, 열패감을 안겨주고 있을 뿐입니다.
어쩔 수 없거나 현장을 몰랐던 사람들이 아니라면 어느 누가 ‘집창촌’이 있는 동네에서 살 고 싶겠습니까? 그런 곳을 두고 우리 아이들에게 무슨 교육을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로 인해서 지역발전을 저해하고 있는 현실은 또 어떻습니까? ‘용주골’이 위치한 파주읍은 지리적으로 파주시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고, 도로 신설 등으로 개발 수요가 많은 곳이기도 합 니다. 그런 곳에 ‘집창촌’이 있으니 인구 유입이라든가 교육, 문화시설 유치는 기대하기도 어렵습니다. 주변에 산업 시설이 들어선다고 해도, ‘용주골’ 주변에 살려고 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고 이는 결국 지역의 경쟁력 약화로 귀결되는 것입니다.
지역 주민들의 자존감이라든가, 교육 문제, 지역발전의 문제, 파주시 전체의 이미지 문제, 어느 것을 보더라도 ‘용주골’이 파주에 존재해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폐쇄가 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