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주신문 – 인터뷰]
오늘도 꽃을 보며 배운다
- 권오섭 파주시야생화연구회 회장
‘심학산 난촌’은 심학초등학교 입구에 자리 잡고 있다. 시때때로 심학산을 바라보며 아름다운 심학산으로 가꾸고 싶어하는 파주시야생화연구회 권오섭 회장이 새로 터를 잡은 야생화들의 천국이다. 동패리에 있던 야생화 전시장을 심학산 아래로 이전하려고 터를 준비했지만, 계획이 어긋나면서 많은 고심 끝에 새로이 마련한 난촌의 새 둥지이다. 천여 평 위에 전시장, 야생화 생태관, 란재배실과 쉼터가 있다. 입구에는 솟대들이 ‘심학산 난촌’의 입구임을 표시하고 있다. 11년째 파주시야생화연구회를 맡고 있는 권오섭 회장을 만나 꽃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 야생화를 좋아하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요?
어머니가 꽃을 좋아하셨기 때문에 주변에 늘 꽃이 있었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저도 저절로 꽃이 좋아지더군요. 꽃을 사러 가면 우리 꽃보다는 외래종이 많아서 ‘이건 아니다’ 싶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우리 꽃을 알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토종 야생화를 모으고 가꾸기 시작했습니다.
질 줄 알면서도 꽃은 핍니다. 하지만 사람은 죽을 줄 알면서 태어난 게 아니지요. 어렵고 힘든 일을 당할지라도, 사람마다 상황이 다 다른 것임을 알면 됩니다. 꽃도 마찬가지죠. 어디서 어떻게 나고 자랐는지, 그 많은 씨앗을 만들어도 다 싹이 나는 건 아니란 말입니다.
봄꽃은 키가 작고 여름·가을 꽃은 키가 큽니다. 봄꽃은 엄마도 할머니도 키가 작습니다. 여름·가을 꽃이 봄에 혼자 쭉쭉 커서 자라면 바람이 많이 불 때 꺽이고 맙니다. 다른 풀들이 자랄 때 같이 자라기 때문에 바람이 불어도 쓰러지지 않습니다. 자연은 더불어 사는 법을 알고 있습니다. 사람도 더불어 살아야 합니다.
삼백초 등은 꽃 피는 시기가 되면 잎이 하얗게 변하고, 괭이눈은 잎이 노랗게 변합니다. 워낙 작은 꽃을 피우기 때문에 곤충들 눈에 잘 띄게 하려고 잎을 꽃잎처럼 보이게 합니다. 백당이나 산딸나무도 가화를 통해 수정을 돕습니다. 꽃잎에는 곤충의 눈에 잘 보이는 허니로드가 있고 꿀은 깊이 있어 수정을 용이하게 합니다. 사람은 식물을 보며 지혜를 배워야 합니다. 지금 현재 400여 종의 토종 야생화를 키우고 있는데 저는 오늘도 꽃을 보며 또 배웁니다. 날마다 꽃을 보며 감탄합니다.
‘심학산 난촌’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1952년 심학산 아래 동패리에서 태어났고, 1963년 심학초등학교를 졸업(9회)했습니다. 13대조 할아버지께서 자리를 잡은 곳이라 30년씩만 잡아도 400년 전부터 대대로 지켜온 땅입니다. 심학산은 늘 곁에 있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심학산에 특별히 애정이 많습니다. 난촌은 ‘란蘭’이 있는 마을입니다. 현재 제주 한란(寒蘭)을 조직 배양 등으로 난분하여 600주 정도 키우고 있습니다. 제주 한란은 천연기념물 제191호인데, 한라산의 남쪽 사면이 한란 자생 가장 북방 지역이라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습니다. 우리나라 식물종에서 종 자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것은 한란뿐입니다. 그만큼 귀한 종입니다. 가격도 물론 비싸죠. 그래서 제주에서는 한동안 제주 한란이 반출 금지 품목이었다가 해제된 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제주 한란이 제주도의 점유품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통일이 되어 백두산까지 그 향기가 퍼져나가길 바랍니다. 그래서 제주와 백두산의 중간인 여기 파주에서 한란의 전초기지를 만들고 싶습니다. 돈 많고 시간 많은 사람만 키우고 향유하는 게 아니라, 저렴한 가격에 보급해서 일반인들도 고귀한 한란의 향기를 손쉽게 접할 수 있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 심학산에 남다른 애정이 있는 것 같은데, 어떤 바람이 있는지요.
우선은 심학산 진달래를 복원하고 싶습니다. 심학산에는 진달래가 아주 많았습니다. 강화 고려산 진달래보다 더 아름다운 진달래를 볼 수 있었는데, 지금은 예전만 못해서 조금 아쉽습니다. 산은 보전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나무 간벌도 하고 관리를 해줘야 나무들도 잘 자라고 야생화도 자랄 수가 있습니다. 나무가 너무 빽빽하게 자라면 그 아래는 햇빛이 잘 들지 않아 작은 관목들이 자라기 어렵고, 또 낙엽이 많이 쌓여서 야생화가 자라기에는 너무나 어려운 환경이 되고 맙니다. 그래서 저는 심학산에 갈 때마다 주머니에 비닐과 패트병을 넣고 갑니다. 야생화가 있으면 씨를 받아 기르고 있는데, 나중에 심학산에 야생화를 심게 되면 그곳에서 자생하고 있던 것들을 심으면 좋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봄이면 깽깽이풀, 복수초, 노루귀 등 봄꽃들도 많습니다. 또 나무들도 삽목을 해서 키우고 있습니다.
심학초 후배들에게 우리 꽃과 새에 대해 알려주고 싶어서 학교에 가서 사진을 보여주며 풀꽃에 관한 이야기, 나무에 관한 이야기, 새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합니다. 집중력이 길지 않은 아이들이 관심을 갖게 하기 위해 문화상품권을 준비하거나 세 권이 한 셋트인 야생화책을 몇 질 가져가서 한 학생이 퀴즈를 맞추면 친구 두 명을 지명해 함께 나와 받고, 다 보면 서로 돌려서 보게 합니다. 다음 해에 학교를 찾았을 때 꼭 한두 명은 달려와서 인사를 하고 “나 야생화 할아버지 알아요.” 하는데, 그럴 때마다 너무나 뿌듯하고 좋습니다. 그 아이들도 나처럼 심학산에 오르면서 내게서 들은 이야기를 몇 개라도 기억해 내고 자연을 자세히 볼 수 있다면 그보다 더 귀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리고 심학산에 꼭 해보고 싶은 일은 심학산에 많았던 바위솔, 큰바위솔 등을 복원하고 싶습니다. 심학산 난촌에서 심학산을 봤을 때 좌측은 작은 심학산, 우측은 큰 심학산이라 부르는데, 작은 심학산에는 맷돌바위가 있고, 큰 심학산에는 수투바위가 있습니다. 바위솔이나 큰바위솔 등 와송을 맷돌바위 주변과 수투바위 주변을 시작으로 점점 더 넓혀서 예전처럼 개체수가 많아질 때까지 해보고 싶은데 지금 상태에서는 심어 놓으면 사람들이 다 가져갈 것 같습니다. 그래서 관계기관에 CCTV를 좀 설치해주면 좋겠다는 의견을 냈는데 소식이 없습니다.
‘파주개성인삼축제’나 ‘파주장단콩축제’가 성공한 것처럼, ‘심학산 야생화 축제’가 자리 잡고 성공한다면, 지역 상권도 살고 주민들도 쾌적한 둘레길을 걸으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게 될 것입니다. 심학산은 이미 서울 근교에 가보고 싶은 곳으로 많이 알려지긴 했지만, 그에 반해 잘 가꾸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멀리서 보면 심학산에 나무만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풀도 있고 바위도 있고 자세히 들여다보면서 느낄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은데 개인의 힘으로는 어렵기만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동참해주시면 좋겠습니다.
해마다 야생화 전시를 열고 있지요?
파주에 자생하는 우리 꽃을 보전하고 보급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서 파주시야생화연구회 회원들과 함께 해마다 열고 있는데, 작년에는 행사 중에 난과 수석 등을 판매하여 얻은 수익금으로 10kg 쌀 100포를 사서 기부하기도 했습니다. 작은 나눔이지만 야생화 전시를 통해 지역문화 활성화에 앞장서서 어려운 이웃에게 관심을 갖고 나눔을 실천하여 곳곳에 따뜻한 온기를 전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평상시에는 야생화를 팔지는 않습니다. 내가 꽃을 키우는 이유가 장사하기 위함이 아닌데, 얼마에 사 왔고 얼마가 들었으니 얼마를 받아야겠다고 계산하는 게 싫습니다. 꼭 갖고 싶다며 팔라고 조르는 사람이 있는데 현찰을 줄 테니 얼마 깍아달라거나 하면 너무 슬픈 생각이 듭니다. 보급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 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오면 상황에 따라 그냥 나누기도 합니다.
제가 야생화를 본격적으로 하기 전에는 수석을 해서 괜찮은 수석도 꽤 있습니다. 란(蘭)을 키울 때 돌도 중요한데, 란석은 주로 화산지대인 일본에서 수입해서 씁니다. 그런데 가격이 자꾸 오르고 있어 우리나라 흙으로 난을 키우는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제주 한란도 마찬가지고 다른 란들도 원래는 흙에서 자라던 것이라 본성은 야생입니다. 야생성에 맞게 키울 수 있도록 연구가 잘 되고 나면, 그 비싼 일본산 란석을 살 필요가 없으니 여러모로 좋을 것으로 보입니다.
.
‘심학산 난촌’에 지금 전시하고 있는 것에 대한 소개를 해주세요.
전시장은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대관료 없이 무료로 빌려주고 있습니다. 지금 열리고 있는 ‘한지공예전’도 원래는 경인미술관에서 전시하기로 계획되어 있던 건데 코로나 때문에 전시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무료로 사용하도록 했습니다. 한지공예는 김선중, 최점주, 명창희, 한은주 작가의 작품들로 한지 설치미술 작품들과 닥종이 인형이 있습니다. 참살이 생활그림 전시는 신미상 작가의 작품들로 부채, 쿠션, 가방, 가리개 등에 그림으로 꾸민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습니다. 또 제가 가지고 있는 석곡(돌이나 고목에 붙어 자라는 란 종류들) 몇 점이 있는데 그중 맷돌 위에 대엽풍란은 꼭 가까이에서 향기를 맡고 가시기 바랍니다.
전시 중인 한지공예 작가 김선중씨를 잠시 만나 작품 설명을 들었다. 특히 ‘한지공예전’ 포스터에 나와 있는 ‘소통’이라는 작품이 눈길을 끌었다. 사선 형태의 반복으로 석양과 지평선 그리고 바다를 표현했다는데 한지와 프리저브드 플라워를 이용해 율동감이 느껴진다. 자연과 인간의 상호 관계와 생명의 순환을 나타내는 작품은 우리의 전통 종이 한지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해서 세련미가 넘치는 작품이다. 그밖에도 한지에 커피물 농도를 조절해 가며 물들여서 향초로 테두리와 일부분을 태워 만든 작품에서는 동서양의 조화를 느낄 수 있었다.
파주시야생화연구회 회원이기도 한 김선중씨는 “권오섭 회장님은 끈기라는 단어로 표현될 수 있으며 한 곳을 바라보고 목표를 이루고자 하는 추진력이 강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 전시관에 옛 유물들도 많이 있네요.
해방 전후에 쓰던 생활 도구, 농경 기계 등 200여 점 중 일부를 함께 전시하고 있습니다. 과거보다는 현재, 현재보다는 미래가 중요하다고 하지만 과거가 있기에 현재가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추억으로 살고, 추억을 남기려고 사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런 옛 추억들이 담긴 것이 소중하고, 현대 물건들이 편하긴 하지만 선조들의 애환과 삶이 느껴져서 좋습니다.
이것도 파주에 유물관이나 박물관이 있으면 기증하고 싶은데, 관련 부서에서는 건물을 지을수는 있지만, 지속적으로 관리하고 수리하고 하려면 예산이 없어서 어렵다는 이야기만 들려옵니다. 교하동사무소 2층에 유물관을 하나 만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아쉽기만 합니다. 김포 같은 경우는 이렇게 기증받은 물건들에 기증자 이름을 기록하고 사진을 찍어 책으로 만들고 하는데 파주에서는 그것이 멀고도 험한 길인가 봅니다.
마지막으로 꼭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시냇가 돌멩이가 가고 싶은 곳이 있다고 마음대로 갈 수는 없습니다. 물살이 세면 빨리 갈 수도 있고, 잔잔하면 그 자리에 오래 머물 수도 있습니다. 사람 사는 것도 그런 것 같습니다. 마음먹는다고 그대로 되는 것도 아니지만 묵묵히 제 갈 길을 가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1,700여 명이 보는 파주밴드와 몇몇 야생화밴드에 매일 사진과 함께 꽃이야기를 올리는데 반응이 제각각입니다. 관심 분야가 다르기 때문이겠지요. 그래도 ‘파주’ 하면 ‘야생화’가 떠올릴 만큼 야생화를 널리 보급하고 싶은 마음은 간절합니다.
사람에게도 향기가 있다. 그 사람의 생각과 마음 그리고 살아온 길이 그 사람의 향기로 남는다. 야생화 꽃씨가 자라 꿈을 키우며 봉긋 솟아오른 꽃망울로 견디다 툭 터지듯, 권오섭 회장이 꾸고 있는 꿈도 향기를 머금은 꽃으로 피어나길 바란다.
인터뷰 작가 김선희 汀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