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랑문화예술제’로 전하는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 - 내종원 파주홍랑문화예술협회 사무국장
파주에는 다양한 문화제가 있다. 그중 지역 인물과 관련된 문화제는 ‘율곡문화제’, ‘방촌문화제’, ‘윤관문화제’, ‘홍랑문화예술제’ 등이다. 그중 ‘홍랑문화예술제’는 다른 인물들과는 다르게 ‘문학적’으로 뛰어난 해주최씨 최경창과 그를 연모한 홍랑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더한다. 지역의 인물은 소중한 인문자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화제의 지속성에 많은 어려움이 있다. ‘홍랑문화예술제’에 관해 알아보고자 내종원 사무국장님을 만났다.
- 파주홍랑문화예술협회를 설립하게 된 동기가 무엇인가요.
파주는 한반도의 중심지역이기에 고인돌(지석묘) 등 선사시대 유적뿐만 아니라, 고려시대 선종과 관련된 이야기를 품고 있는 광탄면 용미리마애이불입상 등 곳곳이 문화유적입니다. 또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조선왕릉 중 4기가 파주에 있고, 파주삼현(묵재 윤관, 방촌 황희, 율곡 이이)과 구봉 송익필, 우계 성혼, 구암 허준 등 훌륭한 인물도 많습니다. 함경남도 마식령에서 발원한 파주의 젖줄 임진강 등 일일이 열거하기가 힘들 정도로 수많은 자연, 유적, 인물들이 있습니다.
그중 최경창 선비와 기생(여류시인) 홍랑을 주제로 문화예술제를 기획하게 된 동기는 어느 날 노래교실에서 가수 민수현의 곡 ‘홍랑(이호섭 작곡, 최홍호 작사)’이라는 노래를 배우게 되면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애틋한 사연이 파주와 연관 있음을 알고 좀 더 자세히 조사하면서 해주최씨 문중을 찾아가기도 했습니다. 전해오는 이야기, 홍랑에 관한 문중 책자 등을 직접 보고 알아가던 중 사대부 선비 최경창과 천민이라 부르던 기생 홍랑 사이, 죽음도 갈라놓지 못한 애절한 사랑의 순애보에 감동하였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널리 알려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쉽지 않은 일이지만 공연예술로 두 사람의 절절한 사랑이야기를 승화시키고자 뜻을 함께 한 분들과 협회를 구성하게 되었습니다.
- 파주홍랑문화예술협회의 그동안 활동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홍랑문화예술제는 2018년 봄, 시민회관 대공연장에서 관객 약 1,300명과 함께 1회 공연을 성황리에 개최했습니다. 2019년 가을에는 시민회관 소공연장에서 관객 약 400명과 함께 2회 홍랑문화예술제를 연 이후, 현재는 코로나로 모든 공연이 잠정적 멈춤 상태입니다.
코로나로 인해 비대면 문화가 일상화되면서, 언택트 예술이 조금씩 확산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겪어보지 못한 생활방식을 접하면서 단체모임 금지, 몇 명 이상 활동 금지 등은 우울증을 유발하는 요인이 되었으며 적응하기 쉽지 않은 현실이 되었습니다.
코로나로 인하여 많은 분야의 사람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공연문화예술 분야는 어떤가요.
인류의 조상 호모사피엔스 이후 인류는 많은 진화를 거듭하였고, 지금도 거듭 지화하고 있는 중입니다. 우리는 어떻게든 이 상황을 넘기게 되겠지만, 많은 시간이 필요하겠지요. 쉽사리 해결되기는 어려울 것이라 생각하며 마음을 비우고는 있는데 허공을 관객 삼아 하는 공연은 선뜻 마음먹게 되지 않습니다. 지역문화예술은 생활중심과 함께 현장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현재 국가적, 사회적 최우선 과제는 단연코 코로나 발생 인원 추이 변동 및 백신 등에 관한 문제일 것입니다. 하루속히 코로나가 종식되어 3회, 4회, 5회 ‘홍랑문화예술제’를 개최할 수 있기를 바라며, 현재는 협회 회원과 관계자 일부 그리고 홍랑문화제를 기다리는 사람들과 다양한 방법을 모색 중입니다.
- 파주홍랑문화예술협회에서 기리고 있는 ‘홍랑과 고죽(孤竹) 최경창’에 관해 이야기해 주세요.
고죽 최경창(1539~1583)은 조선 명종과 선조 시대의 인물로 학문과 문장에 능하였습니다. 원래 전남 영암 출신인데 송순, 기대승 등에게서 학문과 시를 익히고 1568년 과거에 급제한 후 이이·송익필·최립 등과 시를 서로 주고받았고, 정철·서익 등과도 삼청동에서 교류했습니다. 또한 당시(唐詩)에 뛰어나 백광훈·이달과 함께 삼당시인(三唐詩人)으로 불렸고 문장에도 뛰어나 백광훈·송익필·이산해·윤탁연·이순인·최집·하응림 등과 함께 팔문장(八文章)가로 일컬어졌답니다. 전남 영암 외가에서 태어났으나 청년 시절은 파주와 한양을 오가며 학문하였고, 선비적 인품과 천부적인 다재다능함으로 주변에 좋은 벗을 많이 두었으나 45세의 일기로 안타까운 생을 마감하여 현재 파주 교하 다율리에 영면해 계십니다.
홍랑은 함경도 홍원 출생이고 생몰연대는 미상입니다. 재색을 겸비한 홍랑은 아버지 없이 어머니 손에 자라다가, 생계가 막막하여 궁여지책으로 관아기생으로 입적하게 되었다고 전합니다. 행동이나 예의범절 그리고 문학적 소양을 봐서는 필시 양반집 자손으로 보였는데, 조상들이 화를 당해 어쩔 수 없이 기생이 되었으리라 추측하기도 합니다. 최경창과 헤어지며 지은 시는 한국문학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연시로 꼽히기도 합니다.
『묏버들가(歌)』
홍랑
묏버들 가려 꺾어 보내노라 님에게
주무시는 창밖에 심어두고 보소서
밤비에 새잎 곧 나거든 나인가도 여기소서
이른 봄, 님과 아쉬운 이별을 하며 마음을 담아 건넨 것이 묏버들입니다. 불후의 명시가 된 홍랑의 이 시는 중·고등 교과서에 나오고, 대입 수능 시험에도 자주 출제되고 있습니다. 이별이 임과 나를 갈라놓아도 임에 대한 나의 사랑은 변함이 없으며, 부디 자신을 기억해 달라는 사랑의 절규 섞인 당부를 하고 있습니다. 가려 꺾어 보낸 ‘묏버들’처럼 임의 곁에 늘 머물고 싶다는 간절한 의지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결국 홍랑은 최경창이 죽자 최경창 곁에서 함께 하겠다며 자결을 한 애절한 여인입니다.
두 사람은 만남부터가 극적이었습니다. 고죽이 선조6년(1573) 함경도 북도평사(北道評事)로 경성(鏡城)에 부임한 축하 연회에서 첫 만남이 있었습니다. 홍랑은 시 한 편을 낭송하며 “소인은 고죽님의 시를 좋아합니다.” 라고 하자, 이 말을 들은 최경창은 “바로 내가 고죽(孤竹)이니라.” 하였답니다. 연회에서의 짧은 만남을 통해 서로 호감을 직감하며 더욱 가까워졌습니다.
비록 신분은 비천했으나 아름다운 것은 물론 문학적인 교양과 각종 악기 ,가무에까지 능통하고 문장과 서화 등을 익히는데 게을리하지 않았다니 지금으로 치면 만능 엔터테이너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한때의 사랑으로 그치지 않고 헤어진 3년 동안 연락이 끊겼어도, 병석에 누워 아픈 몸이어도 변하지 않는 사랑은 시묘살이를 자처했고 7년의 피난길에서도 고죽의 작품을 지켰습니다. 한낱 여인의 사랑으로 치부하기엔 그 사랑이 깊고 고귀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랬기에 당시 대단했던 해주최씨 문중에서도 인정하고 최경창 묘 아래에 홍랑을 묻어주었겠지요.
- 홍랑과 최경창의 묘가 개발로 인해 또 이장을 해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네. 현재 최경창과 홍랑이 잠들어 계시는 다율리의 묘소가 파주GTX-A노선의 차량 기지창 문제로 종중에서는 이장에 관한 논의가 진행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참으로 애통하고 가슴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약 480년 전에 두 분이 원래 묻힌 곳은 월롱 다락고개 부근이었습니다. 일전에 이화여대 파주캠퍼스로 거론되었던 곳입니다. 그런데 6.25전쟁 이후 북한군의 남침을 억제하기 위해 미군부대 ‘캠프에드워드’가 1969년에 주둔하는 관계로 강제로 떠밀려서, 현 다율리에 모시었는데 또 국가정책(GTX기지창)으로 이장 문제에 봉착하게 되다니 이 무슨 기구한 운명이란 말입니까? 저승에서도 두 분이 사이가 너무 좋아 신이 시기(猜忌)와 훼방(毁謗)을 하는 것인지…. 하늘에서는 비익조가 되고 땅에선 연리지가 되어 세세생생(世世生生) 함께 하고자 했던 두 사람에게 이토록 가혹한 시련을 주시는지, 이장 문제는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 파주홍랑문화예술협회의 향후계획을 말씀해 주세요.
홈페이지를 구축해 홍랑의 자료를 모아, 많은 사람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만들고자 합니다. 그리고 홍랑문화예술제 등 관련 행사의 사진 자료, 영상 자료 등을 모아 추후엔 인터넷 홍랑박물관이 될 수 있도록 하고 싶습니다. 또 홍랑 동상과 공원을 만들어 홍랑 가요제를 열고, 더 나아가 연극 및 뮤지컬로 만든 홍랑이야기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지역의 인문자산을 인식하고 향유하게 하고 싶습니다.
본 협회는 ‘홍랑문화예술제’를 통해 각박한 현대의 인명 경시, 인스턴트 사랑, 이기적 사고 등에서 벗어나, 두 사람의 절절한 사랑을 공감해 보고 잠시나마 정서적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영혼을 정화시키는 그런 예술제가 되도록 꾸준히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지면을 빌어 ‘파주홍랑문화예술제’를 사랑하여 주시고 많은 관심을 가져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사영기 초대 회장님, 지길웅 현 회장님, 장건하 전 대회장님, 해주최씨 종중, 각 노래교실 회장님과 노래 강사님 그리고 노래교실 회원님들께서 행사에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셨던 것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코로나를 지혜롭게 극복하고 건강한 만남이 곧 이루어지기를 학수고대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지역문화의 발전은 지역공동체의 자발성과 향유, 공감을 통해 역동성이 발현된다. 그것은 문화 의식을 확장시키고, 소중히 여기며 널리 알리는 계기를 마련한다. 그런 의미에서 ‘파주홍랑문화예술협회’에서 추진하고 있는 ‘홍랑문화예술제’가 끊이지 않고 이어나가길 바라며, 향후 계획들이 잘 추진되길 기원한다.
인터뷰 작가 김선희 汀彬
kimsunny0202@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