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에는 언론인을 신문이나 방송 등 언론 기관에 관계하여 언론으로써 그 업을 삼는 사람. 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신문이나 방송 따위를 만들고, 관계를 하고 있으니 ‘언론인’이라고 하는 것은 맞으나, ‘업을 삼는 사람’이라는 말 앞에서는 ‘그렇다’라고 말하기가 좀 주저 됩니다. 역시 사전에서는 ‘업(業)’을 1. 먹고살기 위해 하는 일. 2. 전세에 지은 소행 때문에 현세에서 받는 응보. 3. 몸과 입과 마음으로 짓는 선악의 소행 이라고 말 하고 있습니다.
우선 게 중에서 1.은 미미한 지역 신문 따위로 ‘먹고 사는 일’을 삼기에는 애초부터 터무니없는 일이라, 포기한 지 오래니 ‘업(業)’으로서의 언론인이 아님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2.와 3.으로서의 언론인은 분명해 보입니다.
‘돈 안 되고’ 욕만 먹는 ‘언론인’이라는 헛 껍데기를 뒤집어쓰고 살아가고 있는 것을 보면 전세에 무슨 나라 팔아먹은 죄라도 지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3. 몸과 입과 마음으로 짓는 선악의 소행이라는 것에서도 ‘언론인’이 분명합니다.
‘언론인’이라고 함은 ‘공익’이라는 ‘가치’를 위해서 라고는 하지만 남들을 ‘욕’하는 일이 대부분인지라 몸과 마음은 아닐지는 모르지만 ‘입’으로 선악의 소행을 하고 있으니 ‘업(業)’이고 그런 의미에서 ‘언론인’이 맞습니다.
이렇듯 저는 언론인이기도 하고 언론인이 아니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언론인’이라고 불리는 것이 늘 부끄럽습니다. 부끄러움의 근저에는 ‘먹고 사는 일’에 한 없이 무능하고, 부족한 필력과 사고의 한계가 그렇고, ‘남에게 상처 주는 일’에 담대하지 못한 나의 ‘쫄보’기질이 자리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다가 저는 삶의 순간순간마다 현명하지 못한 선택을 했고, 불행하게 ‘행운’도 없었습니다. 제가 이성(理性)이라 믿으며 쌓아 올렸던 것들은 제 선택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남들이 ‘언론인’이라고 칭하는 사이에 저는 ‘세상물정에 어둡고’ ‘고집스러우며’ ‘근거 없이 낙관적인’ 그런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세상 물정에 어두’웠으니 소유는 형편없고, ‘고집스러’우니 주위에 사람이 있을 리 없고, ‘근거 없이 낙관’적이니 이 야박한 세상에 헛 다리 만 짚을 수밖에요.
삶이 그러하니 친구나 후배, 형제들에게 따뜻한 밥한 끼 사준 일이 없고, 부모님 호주머니에 푼돈이라도 넣어드린 적이 없음은 물론입니다. 홀로 유흥이나 도박을 즐긴 사실도 없습니다.
그러하므로 아내에게도, 아이들에게도, 친구나 형제, 선•후배, 부모에게도 제가하는 ‘지역신문’이라는 일은 욕이나 먹고, 생기는 것도 없는 ‘가치’ 없는 일입니다.
누군들 泰山不辭土壤 河海不擇細流(태산불사토양 하해불택세류. 사마천의 사기 이사열전 중 간 축객서) 따위의 호기가 없겠습니까. 남들이 술 한 잔 살 때 얻어만 먹고 싶은 사람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주머니에 ‘소유’가 없으니 얻어먹는 것도 한 두 번이지 어찌 늘 상 ‘빈대’일 수 있겠습니까. 또한 이런 저런 ‘사회적 관계’들이 좁은 지역사회에서 어떤 압력으로 작용하는지 여러 번 겪고 보니 이 역시 ‘신문’하는 자들에게는 스스로를 옥죄는 ‘권력’이나 ‘자본’과 같습니다.
나 스스로든, 상대가 그리 생각하든, 내 편이라고 생각해온 사람들도 마냥 잘 한일만 있지 않으니, 그 잘못을 ‘지적 질’하는 순간 그들과 나는 내편이라고 생각했던 만큼이나 사이가 멀어지고 맙니다. 이리하여 저는 천지를 돌아봐도 아무도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저는 ‘신문’이란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일에 대해서 물러섬 없이 ‘할 말을 하는’ 사회의 공기(公器)라고 믿어 왔습니다. 그럼으로써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음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정의’와 ‘진실’을 말한 결과는 황망했습니다. 세상은 그런 것에 관심을 두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 결과 저는 전자에 말한 저의 모자람에 더해서, 때로는 ‘죄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쯤해보니 언론인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한 삶을 언제까지 살 수 있을까 싶습니다.
저는 ‘씩씩한 언론인’들이 부럽습니다. 입으로는 듣기에 좋은 말만 하고, 배를 치며 등을 찌르는 노련한 솜씨가 부럽습니다.
저는 그리 될 자신이 없기에 제게 ‘언론인’이라는 칭호는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한 ‘반 그치기’라는 뜻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