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화롭고 의미 있는 선택
- 손배찬(전 파주시의회 의장)
최선을 다한 시간이었기에 본인은 아쉬움이 없다는데 손배찬 전 파주시의회 의장이 시의원으로 열정을 쏟은 8년이 너무 짧다고 느껴지는 것은, 지역을 위해서 더 많은 일을 할 사람이라는 기대치를 접어야 하는 아쉬움 때문이다.
더위가 한창인 7월 말경 한 카페에서 기다리는데, 여전히 사람 좋은 웃음으로 다가왔다.
요즘 어떻게 지내고 계시는가요?
기초의원 초선과 재선 임기를 끝내고 시간이 좀 여유가 있으려나 했는데, 그동안 의정활동에 집중하느라 미뤄두었던 일들을 하다 보니 오히려 더 바쁜 날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30년 넘게 하고 있는 조기축구, 운동, 등산, 지인들과 만나 담소를 나누고 식사하기, 독서 등등 평범한 일상입니다.
그러시군요. 그럼 최근에 읽은 책 중에서 소개하고 싶은 책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명견만리-정치·생애·직업·탐구 편』을 다시 읽고 있습니다. 세상의 변화를 대비할 때 미래를 맞이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고민할 때 한 번쯤 읽어보면 좋은 책입니다. 저 자신이 지금 또 다른 출발점에 서 있어서인지 새롭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고 그렇습니다.
KBS 시사교양 프로그램 ‘명견만리’를 네 권의 책으로 만든 것인데, 70만 부 넘게 인쇄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문 대통령 추천 도서로 알려지면서 당시 인기가 급상승했었죠. 우리 사회의 미래를 함께 고민해 볼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어서 특히 젊은 사람들이 읽으면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할 젊은 세대를 본다면 한국은 그리 매력적인 투자처는 아니다. 그러나 통일된 한국이라면 세계에서 유일하게 매력적인 투자처가 될 것”이라고 한 세계적인 투자자 짐 로저스가 2017년 우리나라에 왔을 때 DMZ를 함께 갔던 일도 생각났습니다. 짐 로저스는 ‘명견만리’ 프로그램에도 출연했었죠.
<짐 로저스와 통일대교에서 찍은 사진>
공인이었을 때는 정약용의 『목민심서』를 가까이했습니다. 공인으로서 갖춰야 할 덕목이 세세하게 나와 있어 깊이 와 닿아 그랬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널리 알려져서 보편적인 내용이 되었지만, 정약용이 그 글을 쓸 당시를 돌아보면 백성이 원하는 바를 적은 획기적인 글입니다.
‘수령은 근민(近民)의 관직으로서, 다른 관직보다 그 임무가 중요하므로 반드시 덕행·신망·위신이 있는 적임자를 선택해 임명해야 한다. 또한 수령은 언제나 청렴과 절검을 생활신조로 명예와 재리(財利)를 탐내지 말고 뇌물을 절대로 받지 말아야 한다. 나아가 수령의 본무는 민중에 대한 봉사 정신을 기본으로 하여 국가의 정령(政令)을 빠짐없이 두루 알리고 민의(民意)의 소재를 상부에 잘 전달하며 상부의 부당한 압력을 배제해 민중을 보호해야 한다.’라는 부분을 늘 기억하고 실천하려고 했습니다.
삶의 중심이 되는 ‘신념’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정직하게 살고 싶습니다. 거짓말은 하기도 싫고 하지도 않는 성격이라, 선의의 거짓말이라고 할 지라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정직하지 못하면 떳떳하지 못하게 되고 관계가 오래 지속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나 스스로에게도 그렇고, 남에게도 정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또 내 안에는 정의감도 있어서 불의를 보면 용납하지 못합니다. 살면서 합리적 중재는 필요하지만, 불의와 타협하는 것은 안 됩니다. 아마도 가족이 대부분 경찰 등 공직에 있어서 집안 분위기 자체가 대쪽 같은 성향이라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속에서 제가 가장 일탈한 1인일 겁니다. 장사도 해보고, 사업체도 운영해보고 하면서 활달한 성격에 외향적으로 변해 정계에도 발을 디디게 된 것 같습니다.
저는 주위에 적을 두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누구나 의견이 다를 수 있고 추구하는 방향이 다를 수는 있어서, 만나서 이야기 나누다 보면 이해하게 되고 조율해서 맞출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만남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만남을 미루다 보면 해결은 안 되고 오해가 쌓이게 됩니다.
야당동·상지석동 도시계획추진 위원장을 지냈고, 파주시 도시계획 심의위원, 파주시의회 도시산업위원회에서 활동하셨습니다. 도시계획이 가장 큰 관심 분야인가요?
네, 그렇습니다. 그 분야에 경험이 많고 또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라 관심을 두고 의정활동을 했습니다.
제가 시의원이 되고 처음 한 일이 ‘도시계획성장관리방안’을 준비해서 제안한 것입니다. 파주의 특징 중 하나는 도농복합도시라는 점입니다. 장점도 물론 있지만, 야당동 같은 경우는 바로 옆 운정이 신도시가 되면서 운정에 비해 낙후된 지역이 되고 난개발에 분위기 자체가 어지러웠습니다. 그래서 개발압력이 높아 난개발이 예상되는 지역 중 야당을 시범지역으로 6m 도로로 확장하는 것을 기본으로 주택 존, 공장 존, 창고 존으로 구분하여 계획적 개발과 관리 방향을 제시한 것입니다.
관련 부서와 계속 협의하면서 토지 소유자와 개발사업자 등이 주체가 될 수 있도록 지역민들을 찾아다녔습니다. 일정 부분 개발 통제하는 것에 대한 반발도 있었지만 용적률과 건폐율을 상향 조정하는 인센티브를 제공해 동참하도록 했습니다. 이제는 탄현이나 오금리 등 파주시 전체로 확장되고 있고, 전국에서 벤치마킹을 하기도 합니다.
널리 알리고 싶은 것은 가람마을공원에 지하 주차장을 만든 것입니다. 요즘 아파트를 지을 때는 건물 면적뿐 아니라 대상 토지면적 대부분을 지하 주차장으로 만들어 동과 동 사이도 지하로 다 연결이 되고 주차공간도 넓어지게 됩니다. 그러나 일반 상가 건물이나 공공시설을 지을 때는 건물 면적만 지하를 파기 때문에 주차장이 부족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하 주차공간은 용적률과 건폐율에서 빠지기 때문에 이제는 공공시설을 지을 때도 토지면적 대부분을 지하 주차장으로 만드는 곳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 착안해서 녹지공원은 시소유지니까 그 아래에 주차장을 만들면 토지 구매비가 일단 들어가지 않으니 공공주차장을 만드는데 훨씬 수월하다는 것을 제안했습니다. 앞으로 금촌 원형 로터리에도 생길 예정이고 점점 많은 곳에 그런 방식으로 공공주차장이 늘어나 교통난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또 학교 앞에 차량 정차대를 설치해 학생 안전도 지키고 학교의 불안감 해소, 학부모 민원을 동시에 해결하게 되었습니다. 이면도로에 접한 학교인 경우 쉽지 않았지만, 관련 부서와 협력해서 차량 두세 대 안전하게 정차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아주 작게 여겨지는 부분일 수 있지만 이런 것들이 모두 시민들을 위한 일이니까 세심함도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파주시에서 획기적으로 ‘천 원 택시’를 운영한 것은 박수받을 만한 일입니다. 공용버스 시간 단축이나 노선 확대도 중요하지만, 자연부락 같은 경우는 운수회사와 조정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런 지역에 있는 학생들은 등하교 문제도 상당했습니다.
상대적으로 소규모 학교에는 통학버스를 지원해서 아이들의 등하교가 안전하고 편리하게 했습니다. 일반 버스는 해마다 몇십억씩 손실보전금을 지원해야 하는데 민원 개선이 미미해 또 다른 민원이 발생하게 됩니다. 준공영제가 되면 사측과 지자체에서 나누어 부담하게 되니 재정 부담이 일시적으로 가중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중 다수를 위한 거라면 민원 개선을 위해서 과감한 결정이 필요하고, 그럴 때 가장 중요한 것이 협의와 한정된 예산 배정의 적절성입니다. 시의회에서는 역할 범주가 아주 넓어 경기도와 협의해서 버스 준공영제를 제안하고 실행하게 되었고 추후 마을버스도 준공영제 시행을 앞두고 있습니다.
- 다른 분야 중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인가요?
장단면 거곡리 6번지 일원에 마련한 평화농장입니다. 그동안 파주는 분단의 상징, 전쟁과 죽음이 떠오르는 곳이었지만, 이제는 평화와 생명의 땅으로 다시 태어나 역사의 중심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파주는 한반도 어느 곳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곳입니다. 거곡리 평화농장은 남북 평화 행보에 꼭 필요한 부지로 준비한 곳입니다.
2016년 20대 국회 1호 법안인 박정 국회의원의 '통일경제파주특별자치시 설치 특별법'과 연계해서 파주시에서는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 많은 논의가 있었습니다. 남북농업협력과 북방농업 전진기지로 활용하려면 우선 대지 마련을 위해 토지 확보가 필요했습니다. 미래를 내다보고 처음엔 50만 평을 계획했는데 여러 가지 이유로 수정되어 결국은 65,600여 평(21.7h)으로 줄어들었지만, 그래도 그 의미만큼은 고스란히 담았습니다.
앞으로 이곳에 있는 허준 약초 재배와 진동면 하포리에 있는 허준 묘 등을 연계하면서 기존의 DMZ관광을 보완해 차별화 전략을 세우면 파주 DMZ가 역사와 더불어 평화 그리고 한방 클러스터로 더욱 활성화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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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투자자 짐 로저스와 함께 |
또 긴급 사안으로 깊이 있게 논의한 끝에 잉여금을 활용해 LH 공공시설 대지를 매입한 것입니다. 당시 시장님의 부재로 최종 결재권을 넘겨받은 분이 막중한 책임을 동반한 결정이라 심사숙고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적절한 시기가 있는데 놓치면 안 될 것 같아 협의체를 만들어서 진행했습니다. LH와 정산을 보고 운정신도시에 세 곳, 금촌과 문산에 한 곳씩 공공부지 매입을 해 놓았기에, 경제과학진흥원 유치가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커뮤니티 센터와 파주시 제2 행정 청사 등 후속 조처를 할 수 있게 되었다고 봅니다. 부지조차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면 건축비용과 토지 매입 비용을 한꺼번에 감당하긴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떤 일을 하건 전체를 볼 줄 아는 눈이 있어야 합니다. 매사에 눈앞의 것들을 쫓느라 큰 그림을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 파주는 역사와 관광자원이 넘쳐나는 곳이지만 그중에서 가볼 만한 곳을 추천해 달라고 하면 어디가 먼저 떠오르나요?
당연히 DMZ입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못 가본 곳을 동경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파주 DMZ는 그런 곳 중 하나입니다. 생태와 관광, 영농을 연결하면 또 오고 싶은 곳, 자꾸 오고 싶은 곳이 될 것입니다.
다만, 출입 간소화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아 진·출입 절차가 까다로운 단점이 있습니다. 자유로운 왕래가 어렵다는 점을 완화해달라는 요청이 많은데, 파주는 접경지역이다 보니 군부대와 협력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군 협력 전담반을 만들어 DMZ 관련 다양한 현안을 전담하는 창구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평화협력팀이 있지만, 장교 출신의 평화협력관이 합류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면 북파주에 건축을 하려면 군부대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몇십 년 동안 이어져 오고 있는 군사지역의 현안들을 수정 가능한 범위 안에서 조정해야 불균형의 대명사가 된 북파주의 발전을 꾀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패러다임을 바꿔 평화를 준비할 시대입니다. 현재의 통일대교 출입검문소를 민통선 끝부분으로 더 물렀으면 좋겠습니다. 허준 묘나 덕진 산성, 통일촌, 해마루촌을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접근이 쉬워야 사람들이 모이고, 사람이 모여야 활력이 생기게 됩니다. 그것이 곧 파주의 미래를 성장시킬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
파주시의회 의장이었을 당시 민·관·군이 협력해서 오두산 철책 탐방로 개방 협약을 체결했는데 이후 군 관계자가 바뀌고 코로나로 인해 시민들에게 개방하지 못해 무척 아쉽습니다. 60년 전에 머물지 말고 시대 흐름에 맞춰 변화해야 하는데 정권이 바뀌면 북한과의 관계가 경직되기도 하는데 협의체를 결성해서 지속성을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오케스트라가 들려주는 음악이 풍부하게 느껴지는 건 다양성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독주의 아름다움도 전문성과 함께 충분히 즐길 수 있지만, 어느 쪽을 더 좋아하느냐는 성향에 따른 것일 뿐 어느 것이 더 좋고 나쁨의 문제는 아니다.
‘다양성이 능력을 이긴다’라는 말이 있다. 우리 삶에 있어서도 한 우물을 파는 성향의 사람과 다양성에 더 큰 비중을 두는 성향의 사람들이 있다. 손배찬 전 파주시의회 의장은 다양성이 동반하는 풍부한 경험과 행복의 길을 걸으려 한다.
그동안 유권자들이 보여준 지지와 성원에 보답할 수 있는 일이 맡겨진다면, 도시계획 등 전문성을 접목할 수 있는 일이라도 좋고 아니라도 좋다. 또 다른 세계를 경험할 기회라 생각하고 다양한 방법을 모색해 보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지금처럼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손배찬 전 시의회 의장이 앞으로 어떤 일을 하건 조화롭고 의미 있는 선택을 할 거라 믿는다.
인터뷰 작가 김선희 汀彬
kimsunny0202@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