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의 남용과 책임: '막수유(莫須有)'의 교훈
권력을 가진 자는 그 권력의 무게를 견딜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셰익스피어는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고 말했다. 이는 권력자가 책임감과 윤리적 무게를 감당할 능력을 갖추지 않는다면, 그 권력은 결국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경고이다. 우리 사회는 이러한 교훈을 다시금 되새길 필요가 있다. 근거 없는 판단과 억지스러운 법적 해석으로 개인의 삶을 파괴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적 사례로, 중국 남송 시대의 충신 악비(岳飛)의 억울한 죽음을 들 수 있다. 당시 남송의 진회(秦檜)는 금나라와의 강화 협상을 방해한다고 판단한 악비를 제거하려 했다. 그런데 악비에게 실제로 죄를 물을 만한 증거가 없자 진회는 '막수유(莫須有)', 즉 '혹 있을지도 모른다'는 모호한 명분을 들어 그를 죽였다. '막수유'는 '반드시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있을지도 알 수 없다'는 뜻으로, 죄명을 날조해 무고한 사람을 억울하게 몰아가는 것을 비유하는 표현이다. 이렇게 근거 없는 판단으로 충신을 죽이는 일이 역사 속에서 얼마나 큰 비극을 초래했는지를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된다.
현대에도 이와 유사한 권력 남용의 사례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최근 한 정치인의 발언과 관련된 법적 분쟁이 그러하다. 검찰과 법원이 각각 억지로 죄명을 끌어내려 하는 모습을 보면, 마치 진회가 '막수유'를 외치며 악비를 죽이려 했던 것이 떠오른다. 검찰은 '김문기를 몰랐다'는 발언이 기억의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행위'의 문제로 둔갑시켜 기소했고, 법원은 이 발언이 허위라고 강조하면서도 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는 아니라고 판단하는 기막힌 모순을 보였다. 게다가 '골프를 치지 않았다'는 발언을 한 적도 없음에도 이를 허위사실로 인정하는 등, 근거 없는 추론을 바탕으로 유력한 정치인의 정치 생명을 끊으려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백현동 부지 용도변경 특혜 의혹과 관련된 발언 또한 마찬가지다. 국토부가 하위 지자체에 여러 차례 공문을 보내고 압박을 가했음에도, 이를 협박이 아니라고 판단한 법원의 결정은 그야말로 황당하기 그지없다. 압박받는 지자체장이 그걸 협박으로 느끼지 않았다면 오히려 그게 더 이상하지 않을까? 이런 부당한 판단이 과연 천하를 납득시킬 수 있을까? 한세충(韓世忠)이 진회에게 따져 물었듯이, '막수유'라는 세 글자로 천하를 어떻게 설득할 수 있겠는가?
권력은 책임과 함께한다. 권력자가 법과 제도를 조자룡의 헌 칼처럼 휘두르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사회와 국민에게 돌아온다. 역사적 비극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억지로 죄를 날조하거나, 권력에 의해 왜곡된 법 적용을 막아야 한다. '혹 있을지도 모른다'는 근거 없는 추론으로 무고한 사람을 희생시키는 일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셰익스피어의 경고처럼, 왕관을 쓰려는 자는 그 무게를 견딜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권력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술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리는 권력 집단이 아닌, 정의와 책임을 바탕으로 한 진정한 지도자가 필요하다. '막수유'라는 부당한 판단으로 천하를 설득할 수 없음을 위정자들은 명심해야 한다.
그러니 권력을 가진 자들이여, 제발 '혹 있을지도 모른다'며 괜한 억지로 사람 잡지 말고, 그 무게를 견딜 수 있도록 좀 더 성숙해지길 바란다. 진정한 권력자는 법을 남용하지 않고, 책임의 무게를 기꺼이 짊어지는 법이다. 괜히 헌 칼 휘둘렀다가 사람 다치게 하지 말고, 왕관을 쓰려거든 그 무게부터 재볼 줄 아는 사람이 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