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표누항[簞瓢陋巷]
簞: 소쿠리 단 瓢: 바가지 표 陋: 더러울 루 巷: 거리 항
한 그릇 밥과 한 바가지 물로 누추한 거리에서 살면서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도를 지키는 삶. 문형배 권한대행은 이 고전적 가치를, 현대의 혼탁한 권력의 심장부에서 온몸으로 보여주었다.
권력을 부(富)로 착각한 이들은, 만찬을 벌이며 세상을 잠시 흔들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시대를 지탱하는 힘은, 결국 검소한 밥상을 지킨 바보들이 시대를 지켰다. 그는 퇴장하지만, 그의 발자취는 이 시대의 양심에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
"도시락과 표주박과 누추(陋醜)한 거리"라는 뜻으로, 소박(素朴)한 시골 생활(生活)을 비유(比喩ㆍ譬喩)해 이르는 말이다.
「논어(論語)」 「옹야(雍也) 편」에는 공자(孔子)가 제자 안회(顔回)를 칭송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안회는 대나무 바구니에 담은 한 끼 식사(簞食)와 박으로 만든 표주박에 담긴 물(瓢飲)로 생계를 이어갔으며, 누추하고 협소한 골목길(陋巷)에 거주하는 등 지극히 가난한 생활을 영위하였다.
子曰: "賢哉回也! 一簞食, 一瓢飲, 在陋巷, 人不堪其憂, 回也不改其樂."
(공자가 이르길, "훌륭하구나, 안회여! 한 바구니의 밥, 한 표주박의 물로 살면서, 누추한 골목에 거주하더라도, 다른 사람들은 그 괴로움을 견디지 못할 터인데, 안회는 그 즐거움을 바꾸지 않는구나.")
여기에서 유래한 "단사표음(簞食瓢飲),단표누항(簞瓢陋巷)"은 물질적 궁핍 속에서도 학문을 즐기고, 도(道)를 따르며 정신적 자족(自足)을 이루는 삶의 자세를 상징하는 고사성어로 자리 잡았다. 이 사자성어는 단순한 검약을 넘어, 삶의 본질을 물질이 아닌 도덕적·지적 가치에서 찾고자 하는 유가(儒家)적 이상(理想) 을 함축하고 있다.
가끔은 한 사람의 선택이 긴 세월을 넘어 사회에 깊은 울림을 남긴다.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그랬다. 그는 요란한 말보다 조용한 실천으로, 높은 자리보다 낮은 자리에서 초심을 지켜온 사람이다.
문 권한대행은 1965년 경남 하동의 작은 농촌 마을에서 태어났다. 가난했지만, 독지가 김장하 선생을 만나 학업의 길을 이어갈 수 있었다.
"나는 사회의 것을 너에게 주었으니, 갚으려거든 사회에 갚아라." 김 선생의 이 한마디는 그의 인생을 결정지었다.
문 권한대행은 법관으로서,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 그 가르침을 늘 마음에 새겼다. 자유에 기초하여 부를 쌓고, 평등을 추구하며, 박애로 공동체를 연결해야 한다는 신념. 그는 말로만이 아니라, 삶으로 그 신념을 증명했다.
27년간 법관으로 일하면서도 그는 결코 특권을 탐하지 않았다. 재산을 불리기보다 시민의 평균에 맞추려 했고, 청문회에서조차 "평균 재산을 약간 넘어 부끄럽다"고 고개를 숙였다.
퇴임 후에도 영리 목적의 변호사 활동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이 시대에 '퇴임 후 대박'을 꿈꾸는 고위 관료들 틈에서, 그는 끝까지 낮은 길을 선택했다.
"누가 요즘 그런 바보짓을 하나" 싶은 세태 속에서, 그는 그런 '바보'로 남기를 택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이라는 역사적 판결을 내릴 때도, 문 권한대행은 정치적 눈치를 보지 않았다. 오직 헌법만을 기준 삼았다. 흔들림 없이, 묵묵히, 맡은 바 소명을 다했다.
오는 18일, 그는 조용히 퇴임한다. 떠나는 모습마저 군더더기 없이 담백하다. 권한대행의 자리조차 사유화하지 않은 그를 보며, 우리는 진정한 공직자의 품격이 무엇인지 깨닫는다.
한편, '경제를 책임진다'던 최상목 부총리는 그 책임을 참 독특하게 이해했다.
그는 환율이 떨어질수록 수익이 나는 미국 국채에 2억 원을 몰빵 투자해 짭짤한 이익을 봤다는 의혹에 휩싸였다. 경제는 뒷전이고, 본인 재테크에만 충실했던 셈이다.
국민 경제는 폭삭 주저앉아도, 최 부총리의 주머니는 한껏 불어났으니, 어쩌면 그는 '성공한 경제인'이라고 불러야 할지 모른다. 경제도 정치도 주식처럼 '투기'한 그는, 대통령 권한대행 직책까지 '레버리지' 삼아 사용했다.
헌재의 만장일치 결정을 가볍게 무시하고, 마은혁 재판관 임명을 거부하며 헌법을 갖고 놀았다. 윤석열 체포를 방해하고, 극우 세력의 준동을 위한 시간벌이에도 최선을 다했다.
검찰은 또 어떤가. 심우정 검찰총장은 이름만 총장이지, 실상은 '윤석열 집사' 노릇을 자처했다. 비화폰 압수수색을 막고, 윤석열의 사실상 탈옥을 돕고, 경호처 간부들의 구속을 손사래 치며 방어했다. 그의 가족 역시 한몫했다. 121억 원의 신고 재산을 가진 심 총장의 장녀는, 서민들 위한 햇살론 대출까지 알뜰히 챙겼다. 없는 사람들 몫을 빼앗는 데도 타고난 재능을 보이더니, 급기야 외교부 특혜 채용 의혹까지 끌어안았다. 이쯤 되면 '신성가족' 정도는 약하다. 차라리 '헌법 초월 가족'이라고 부르는 게 어울린다.
떠나는 문 권한대행의 묵묵한 초심과, 남아 있는 자들의 탐욕스런 파렴치. 이 대비는 슬픈 시대의 초상화이자, 뼈아픈 자화상이다.
단표누항(簞瓢陋巷). 한 그릇 밥과 한 바가지 물로 누추한 거리에서 살면서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도를 지키는 삶. 문형배 권한대행은 이 고전적 가치를, 현대의 혼탁한 권력의 심장부에서 온몸으로 보여주었다.
권력을 부(富)로 착각한 이들은, 만찬을 벌이며 세상을 잠시 흔들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시대를 지탱하는 힘은, 결국 검소한 밥상을 지킨 바보들이 시대를 지켰다. 그는 퇴장하지만, 그의 발자취는 이 시대의 양심에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