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동의 가치는 시장(市場)이 아니라 사회가 매긴다.
  • 학교현장에서 노동교육이 꼭 필요한 이유


  • 노동의 가치를 누가 매기는가?

    아버지를 간병인 여사님께 부탁하고 돌아서는 길, 마음 한켠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우리 사회는 가장 힘들고 고단한 일을 하는 이들의 노동에 가장 낮은 값을 매긴다. 청소노동자, 급식 종사자, 요양보호사, 간호조무사, 환경미화원, 하청업체 노동자들. 이들 없이는 하루도 제대로 굴러가지 않을 사회가, 이들의 노동 앞에서는 너무도 인색하다.

    학생들에게 “노동자”라는 단어를 들려주면 “못 배운 사람”, “힘든 일 하는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먼저 떠올린다. 왜 우리는 이렇게 노동이라는 단어를 혐오하게 되었을까? 왜 노동자는 존중의 대상이 아닌 연민과 회피의 대상이 되었을까?

    10일, 파주시 노동권익센터에서 들은 하종강 교수의 노동 관련 강의는 이러한 질문에 본질적인 성찰을 던진다. 그는 ‘근로자’와 ‘노동자’라는 용어의 뿌리부터 짚어낸다. 근로는 ‘열심히 일한다’는 점에서 순응적 의미가 강하며, 조선시대의 머슴이나 노비를 연상케 하는 낱말이다. 반면 노동은 산업화 이후 등장한, 계약에 따라 일하며 권리를 갖는 시민으로서의 개념이다. 하 교수는 우리가 '근로'가 아닌 '노동'을 써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강조한다. 노동은 단순한 생계 수단이 아니라 인간의 권리와 존엄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노동을 천시하게 되었을까? 그 뿌리는 ‘교육’에 있다. 하 교수는 우리나라 교육과정에는 노동에 대한 제대로 된 교육이 없다고 말한다. 노동의 역사, 노동자의 권리, 노사관계 같은 주제는 사회과 교과서에서도 변두리 취급을 받는다. 학생들은 노동자의 삶을 이해할 기회를 가지지 못한 채 사회에 나와 노동을 막연히 ‘천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반면 독일, 프랑스 등 노동을 존중하는 사회들은 어릴 때부터 철저하게 ‘노동교육’을 실시한다. 독일에서는 초등학생들이 실제 기업 자료를 바탕으로 모의 노사 교섭을 하고, 노조 간부 역할을 맡아 임금 협상을 해본다. 아이들은 단체협약의 의미를 체험하고, 노동 조건이 삶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고민한다. 교과서에는 금속노조와 사용자단체가 맺은 협약서부터 항의문건, 성명서, 연설문 작성 방법까지 구체적으로 담겨 있다. 어떤 학급에서는 대부분의 아이들이 ‘경영자’가 아닌 ‘노조 간부’를 자처한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프랑스도 마찬가지다. 초·중등학교 ‘시민교육’의 핵심은 노동이다. ‘일, 노동, 권리’라는 대단원 아래, 학생들은 노동자의 권리와 정부·기업의 책임을 배운다. 고등학교에서는 ‘단체교섭의 전략과 전술’을 수개월간 배우며 노동조합의 역할과 중요성을 체득한다. 직장폐쇄에 맞선 노동조합의 사례를 시험 문제로 다룰 만큼 노동교육은 교양의 기본으로 자리 잡았다.

    이처럼 체계적인 교육을 받은 이들은 경찰, 소방관, 판사, 교장, 심지어 정보기관 요원까지 노동조합에 가입하고 자신의 권리를 지킨다. 노동조합은 ‘힘든 일을 하는 저학력 저임금 노동자’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이는 시민으로서 누구나 마땅히 가져야 할 권리이며, 존엄의 기초이다.

    노동문제는 결코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구조적인 시각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버스 기사가 졸음운전을 하다 사고를 냈다면, 단순히 개인의 과실로만 봐선 안 된다. 왜 그가 졸았는지를 들여다보면 하루 15시간 이상 운전하며 겨우 3~4시간만 자는 노동환경이 원인일 수 있다. 이런 구조 속에서는 누구든 사고를 낼 수밖에 없다. 노동조합은 바로 이런 문제를 사회 전체의 의제로 끌어내고 구조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장치다.

    하종강 교수는 비정규직 문제 역시 구조적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다른 나라에서는 비정규직이 정규직보다 임금이 높다. 불안정한 고용환경을 감안해 보상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정반대다. 임금은 낮고 고용은 불안정하다. 하지만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 이후 수리기사들이 정규직으로 전환되자 고장률이 급감했다는 사례는, 정규직 전환이 개인뿐만 아니라 기업과 사회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대부분의 사람은 경영자가 아닌 노동자로 살아간다. 그렇기에 노동에 대한 권리 교육은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상식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지금까지 너무 오랫동안 노동을 타인의 문제로 치부해왔다. 하지만 노동은 바로 ‘나의 문제’이며, 나의 삶과 직결된 권리다.

    웹툰 <송곳>은 이런 노동의 현실과 권리를 드라마틱하게 담아낸 작품이다. 왜 사람들이 노동조합에 가입해야 하는지, 왜 목소리를 내야 하는지를 뼈아프게 그려낸다.

    우리 사회가 진정 공정하고 건강한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노동에 대한 가치가 더 존중받아야 한다. 노동의 가치는 시장(市場)이 아니라 사회가 매긴다. 그리고 그 사회를 만드는 것은 바로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 자신이다. 노동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한 당연한 권리다. 이제는 그 권리를 바로 배우고, 제대로 말해야 할 때다.

     

  • 글쓴날 : [25-06-12 21:33]
    • 지은영 기자[jey20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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