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원(動員)정치의 구태를 넘어, 동행(同行)정치의 새 길로 가라
  • 이재명 대통령의 타운홀 미팅과 김경일 시장의 이동시장실에서 읽는 진짜 민주주의의 길
  • 대한민국 정치의 ‘소통’이라는 말은 오랫동안 공허한 수사에 불과했다. 선출직 정치인들은 ‘시민의 목소리 경청’을 내세웠지만, 정작 그 현장은 동원된 박수부대와 사전 각본에 짜인 이벤트로 가득했다. 질문자는 미리 선정되고, 답변은 준비된 원고에서 나왔다. 여론은 ‘만들어진 민심’으로 포장됐고, 비판의 목소리는 철저히 걸러졌다. 그것이 지난 수십 년간 반복된 ‘동원정치’의 실상이다.

    그러나 최근 한국 정치에 조용한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그 상징적 장면이 바로 이재명 대통령의 타운홀 미팅과 김경일 파주시장의 이동시장실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광주 타운홀 미팅에서 시민 질문에 직접 답변하고 있다경향신문 캡춰
    @ 이재명 대통령이 광주 타운홀 미팅에서 시민 질문에 직접 답변하고 있다.<경향신문 캡춰>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6월 25일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취임 후 첫 공식 타운홀 미팅을 열었다. 지역의 가장 큰 갈등 현안인 민간·군 공항 통합 이전 문제를 놓고 시민들과 직접 마주 앉았다. 사전 각본 없는 자유 질의응답 속에서 12명의 시민이 마이크를 잡았고, 대통령은 현장에서 즉각 답변을 이어갔다. 대통령실 TF 설치라는 구체적 대책도 제시됐다. 특히 “다름을 적대하지 말자”는 대통령의 발언은 정치적 포용과 민주주의적 공존이라는 키워드를 다시금 환기시켰다.

    광주 타운홀의 시사점은 명확하다. 이제 국정 운영의 방식도 변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통령이 지역 갈등의 중심에 서고, 불편한 민심과 직접 대면하며 해법을 모색하는 장면은 과거 권위주의적 리더십과는 분명히 선을 긋는 모습이다.

    지방에서도 유사한 실험은 이미 오래전부터 진행되고 있다. 김경일 파주시장의 이동시장실은 그 대표적 사례다. 2022년 민선8기 출범 이후 현재까지 152회를 넘긴 이 제도는 파주 시민들 사이에서 이미 ‘현장형 소통 모델’로 자리 잡았다. 특정 계층이나 단체의 동원 없이, 주민 요청에 따라 시장이 직접 마을로 찾아가고, 민원을 청취하며 현장에서 즉각 피드백을 준다. 봉암1리의 수로 정비, 백석3리의 배수문 자동화, 장애인 가족 대상 맞춤형 소통 등 실제 성과들도 적지 않다.
     김경일 파주시장이 봉암1리 마을회관에서 주민들과 민원 현장 소통을 하고 있다파주시 제공
    @ 김경일 파주시장이 봉암1리 마을회관에서 주민들과 민원 현장 소통을 하고 있다.<파주시 제공>
    흥미로운 점은 두 사례 모두 ‘형식보다 본질’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타운홀 미팅(town hall meeting)은 특정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다. 미국에서는 대면 모임뿐 아니라 전화 회의, 온라인 플랫폼, SNS 생중계 등 다양한 형태로 진행되어 왔다. 중요한 것은 시민이 묻고, 권력자가 답하며, 그 과정에서 구체적 변화가 생겨나는 것. 김 시장의 이동시장실 역시 그 본질에서 타운홀 민주주의의 지방자치 버전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변화가 진정한 정치 문화로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몇 가지 과제가 남아 있다. 

    첫째, 이런 소통이 ‘일회성 이벤트’로 그치지 않도록 제도화가 필요하다. 대통령의 타운홀 미팅이 정례화되지 않는다면 그 상징성은 금세 퇴색할 것이다. 

    둘째, 불편한 질문과 비판적 목소리도 계속해서 담을 수 있는 용기가 정치인들에게 요구된다. 현장의 목소리가 정책 결정에 실질적으로 반영되는 ‘피드백 루프’가 구축돼야 한다.

    셋째, 시민 사회의 성숙도 역시 과제다. 소통의 장은 권력자가 마련할 수 있지만, 그 공간을 제대로 채우는 것은 시민들의 책임이다. 동원된 참여가 아니라, 자발적이고 성숙한 민주시민의 참여가 있어야만 이 실험은 완성된다.

    지금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동원정치의 그림자를 넘어 새로운 정치문화로 나아갈 수 있는 전환점에 서 있다. 이재명 대통령의 타운홀 미팅이 국가 차원의 ‘동행 정치’ 출발점이라면, 김경일 시장의 이동시장실은 지역 풀뿌리 민주주의의 살아있는 실천 현장이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귀찮고 번거로운 과정 속에서 피어난다. 불편한 민심 앞에서 멈추지 않는 정치, 그것이 지금 이 나라가 가야 할 길이다.
  • 글쓴날 : [25-06-28 19:51]
    • 내종석 기자[pajuo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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