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그 자리에 있었다’ – 민주주의 증인이 된 공무원 김혜원 씨, 헌법 앞에 서다
  • ‘나는 그 자리에 있었다’ – 민주주의 증인이 된 공무원 김혜원 씨, 헌법 앞에 서다


    지난 12월 3일, 대한민국 현대사에 길이 남을 비상사태가 발생했다. 이른바 ‘12.3 계엄령 선포 시도’. 국회 앞에는 장갑차가 출동했고, 민주주의의 최후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시민들이 거리로 몰려들었다. 그 현장 한복판에 파주시청 전직 공무원이었던 김혜원 씨도 있었다.

    김 씨는 오마이TV에서 당시의 긴박했던 순간을 증언한 이후, 뉴스공장과 매불쇼 등 여러 언론에 노출되며 그의 행동이 전파를 탔다. “공무원 신분이었지만 정치적 중립을 지킬 수 없었다”, “내란 상황에서 시민으로서 국회를 지키기 위해 거리로 나섰다”, “장갑차를 막으려 현장에 있었다”는 그의 발언은 SNS와 지역사회, 그리고 전국 곳곳에 빠르게 확산되었다. 그의 용기와 소신은 많은 이들에게 깊은 울림을 남겼다.

    그러나 최근 일부 언론과 지역 정치권, 심지어 현장에 함께 있었던 일부 관계자들 사이에서 ‘사실 왜곡’ 논란이 제기됐다. “장갑차 근처에는 있었지만 손으로 막지는 않았다”, “소극적이었다”는 반박성 증언들이 잇따랐다. 급기야 김 씨의 공무원 신분마저 도마 위에 올랐다. 정규직이 아니라 별정직이었다는 점, 반복된 기간제 근무 경력 등이 일각의 비난 도구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쯤에서 우리는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이라는 개념을 다시 돌아봐야 한다. 공무원법은 분명히 정치적 중립을 요구한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불법적 국가폭력에 복종하라’는 조항은 없다. 오히려 공무원은 헌법 질서를 수호하고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직업군이다.

    12월 3일의 상황은 단순한 정당 지지나 선거운동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헌법파괴를 목적으로 한 내란 시도였다. 김혜원 씨의 행동은 특정 정당을 위한 정치적 행위가 아니라 헌정질서 수호를 위한 시민적 저항이었다. 그가 장갑차를 손으로 직접 막았는지, 몇 미터 떨어져 있었는지는 본질적 쟁점이 될 수 없다. 국회 앞에서 불법적 계엄령 시도에 항거하며 공무원 신분으로 그 자리에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김 씨의 공무원 신분을 둘러싼 왜곡된 시선도 짚어야 한다. 별정직 역시 「지방공무원법」에 따라 임용된 공무원이다. 계약기간이 있다고 해서 공무원 윤리와 의무가 가벼워지는 것이 아니다. 헌법상 정치적 중립 의무 역시 마찬가지다. 오히려 정무직과 별정직 공무원들은 시민과 권력의 접점에서 누구보다도 민감하게 공직윤리와 국민적 책무를 고민해야 하는 위치에 있다.

    김혜원 씨는 공무원 재직 중 대통령 선거 캠프에 참여한 것도 아니고, 특정 정당의 선거운동에 관여한 적도 없다. 그날 그가 거리로 나섰던 이유는 오직 하나, “이건 아니다”라는 시민적 양심이었다.

    그날 김 씨가 장갑차에 손을 댔느냐 아니냐보다 더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그날, 당신은 그 자리에 있었는가. 그 순간, 당신은 시민으로서 무엇을 했는가. 비판하는 이들 중 상당수는 그날 국회 현장에 없었다. 몇 장의 사진과 영상 캡처본, 그리고 뒷말들만으로 누군가의 용기를 깎아내리고 있을 뿐이다.

    설령 김 씨가 소극적이었다 한들 그것이 비난받을 이유인가. 장갑차와 3미터 떨어져 있었다면,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마음까지 3미터 밖인가. 무엇보다 그는 이후 김경일 파주시장에게 국회 현장에 함께했던 시민 7명을 추천해 ‘선행시민 표창’을 받게 했다. 이는 김 씨가 그날 국회에 있었음을 증명하는 공적 기록이자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12.3 사태가 실패로 끝날 수 있었던 이유는 국민들의 저항뿐 아니라 수많은 공직자들의 ‘부당한 명령 거부’가 있었기 때문이다. 계엄해제 의결에 참여했던 일부 국민의힘 국회의원들의 선택 역시 그런 맥락에서 재조명돼야 한다. 그날 국회 안에서는 국회 사무처 직원들이 계엄군 진입을 막아섰고, 언론사 기자들은 밤을 새우며 국회를 지켰다. 일부 군인들조차 상부 명령을 따르지 않고 버텼다.

    김혜원 씨도 그 중 한 사람이었다.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은 불의에 침묵하라는 명령장이 아니다. 불법적 국가 폭력에 저항하고 헌법을 지키라는 것이 공무원의 마지막 책무다. 12월 3일, 김혜원 씨는 그 책무를 다했다.

    그 점 하나만큼은 분명히 기록되고, 기억되어야 한다.


    파주신문 편집국
  • 글쓴날 : [25-07-02 22:12]
    • 내종석 기자[pajuo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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