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두연기[煮豆燃萁] 煮 : 삶을 자, 豆 : 콩 두, 燃 : 탈 연, 萁 : 콩깍지 기
  • 자두연기[煮豆燃萁] 煮 : 삶을 자, 豆 : 콩 두, 燃 : 탈 연, 萁 : 콩깍지 기


    파주시의회는 정지(停止)가 아니라 정치(政治)를 하라! 파주시의회가 기본생활안정지원금 531억 원과 임진강 국가정원 예산을 전액 삭감하며 민생과 미래 정책이 동시에 멈춰 섰다. 이는 재정 판단이라기보다 당론과 선거 계산이 앞선 결과로, 정치의 견제라기보다 정치의 정지다. 파주시의회는 민생 앞에서 결단하고 책임지는 정치로 돌아와야 한다.


    자두연기(煮豆燃萁)는 "콩을 삶기 위해 콩깍지를 태운다"는 뜻으로, 형제나 친밀한 관계에서 서로 해치는 상황을 비유한 사자성어다. 이 표현은 콩을 익히기 위해 콩깍지를 태우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통해, 본래는 서로 도와야 할 관계에서 서로 해를 끼치는 것을 경고하는 의미로 사용된다.
    자기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는 피가 같은 부모형제 사이에도 싸우는 인간의 동물성을 한탄하는 말이다. 
    [煮豆燃豆萁 자두연두기] 콩깍지를 태워 콩을 삶으니
    [豆在釜中泣 두재부중읍] 콩이 솥 안에서 우는구나.
    [本是同根生 본시동근생] 본디 한 뿌리에서 자랐건만
    [相煎何太急 상전하태급] 왜 서로 들볶아야만 하는지.

    형제끼리 다투며 결국 서로를 해치는 어리석음을 경계하는 이 고사성어가, 오늘 파주의 정치 현실과 이토록 닮아 보일 줄은 몰랐다.

    파주시의회 자치행정위원회에서 531억 원 규모의 ‘기본생활안정지원금’과 ‘임진강 국가정원 기본계획 수립 예산’이 전액 삭감됐다. 민선 8기 김경일 시장 집행부가 민생 회복과 도시의 미래를 동시에 염두에 두고 편성한 핵심 예산이었다.

    더 충격적인 점은 이 제동이 전통적인 야당의 강경한 반대 때문이 아니라, 집행부와 같은 정치적 뿌리를 둔 일부 민주당 소속 시의원들의 동조 혹은 침묵 속에서 가능해졌다는 사실이다.

    이는 단순한 예산 삭감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당론과 정략, 그리고 지방선거를 앞둔 계산이 정책 판단의 저울 위에 올라선 순간, 파주의 민생과 미래는 ‘장작’이 되었고, 불길은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서부터 피어올랐다.

    이재명 대통령이 일관되게 강조해 온 ‘기본사회’ 철학은 단순한 복지 구호가 아니다. 위기 상황에서 최소한의 삶을 사회가 함께 책임지겠다는 국가 운영의 방향이다. 코로나 시기 전 국민 지원금과 지역화폐를 통한 민생 회복이 일정 성과를 거둔 것도 이 철학의 실천이었다.

    파주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전 가구 난방비를 지역화폐로 지원하고, 역대 최대 규모의 지역화폐를 발행하며, 높은 시민 만족도를 이끌어냈다. 이 성과 위에서 설계된 정책이 바로 기본생활안정지원금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민주당 소속 시의원들은 ‘재정자립도’, ‘선심성 논란’, ‘지방선거를 앞둔 부담’을 이유로 들며 예산에 제동을 걸었다.

    그러나 묻지 않을 수 없다. 민생이 가장 어려운 시기에 민생 예산을 멈추는 것이 과연 진보 정치의 언어인가. 기본사회라는 큰 깃발 아래 모였던 동지들이, 정작 그 철학이 예산서에 적히자 등을 돌린 이유는 무엇인가.

    이번 심의 과정에서 또 하나 주목된 장면은, 그동안 비교적 집행부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여왔던 일부 의원들마저 당론과 정치적 부담을 이유로 삭감 쪽으로 돌아섰다는 점이다.

    정치에서 당론은 중요하다. 그러나 지방정치는 중앙정치의 하부 조직이 아니다. 시민의 삶과 직결된 예산 앞에서, 정당의 이해와 선거 계산이 민생보다 앞선다면 그 정치는 본말이 전도된다.

    김경일 시장이 “오늘의 지역경제를 살리고 내일의 지역경제를 책임질 예산”이라고 강조한 이유는 결코 과장이 아니다. 임진강 국가정원 역시 단순한 조경 사업이 아니라, 민통선 북상과 접경 규제 완화라는 역사적 전환점 위에서 파주가 준비한 미래 전략 사업이었다.

    이를 시작도 하기 전에 막아 세운 선택은, 신중함이라기보다 주저함의 정치, 더 나아가 사심이 개입된 판단이라는 의심을 피하기 어렵다.
    의회의 견제는 필요하다. 그러나 견제는 대안과 설득을 동반할 때 비로소 정치가 된다. 삭감만 있고 대체 전략이 없다면, 그것은 견제가 아니라 정지 버튼이다.

    지금 파주의 풍경은 묘하다. 야당보다 더 강한 제동이 여당 내부에서 걸리고, 시장과 같은 깃발을 들고 선 이들이 그 깃발을 불쏘시개로 삼고 있다.

    자두연기다. 콩을 삶겠다며 불을 지폈는데, 정작 타들어 가는 것은 콩깍지가 아니라 콩 그 자체다.

    이번 파주시의회 판단을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예산 삭감 이후 일부에서 제기된 대안 주장들이다. “기본생활안정지원금 예산을 줄여 과거 단수 피해가 컸던 지역 주민들에게 선지급하고, 이후 한국수자원공사에 구상권을 행사하자”는 주장이다.

    겉으로는 민생을 말하지만, 이는 정치와 행정, 사법의 경계를 혼동한 위험한 발상이다. 단수 피해 보상은 이미 법률과 계약 체계 안에서 다뤄져야 할 사안이다. 원인 규명, 손해 산정, 책임 주체 확정 없이 예산을 선집행하고 사후 구상권을 언급하는 방식은 행정을 즉흥적 판단의 영역으로 끌어들인다.

    민생 예산은 민생 예산대로, 피해 보상은 피해 보상대로 풀어야 한다. 하나의 어려움을 해결하겠다며 다른 정책 목적을 훼손하는 것은, 콩을 삶기 위해 콩을 태우는 자두연기와 다르지 않다.
     김경일 파주시장이 민생 예산 삭감 이후 파주시의회를 찾아 기본생활안정지원금과 국가정원 예산의 필요성을 설명하며 협조를 요청하고 있다
    @ 김경일 파주시장이 민생 예산 삭감 이후 파주시의회를 찾아 기본생활안정지원금과 국가정원 예산의 필요성을 설명하며 협조를 요청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김경일 시장이 직접 시의회를 찾아 “지금은 선거가 아니라 민생을 먼저 봐달라”고 호소해야 했던 장면은 상징적이다. 집행부 수장이 정치적 언어를 내려놓고 읍소해야 하는 구조 자체가, 이미 정치가 제 역할을 놓쳤음을 보여준다.

    정치는 멈추는 기술이 아니라 결단하는 예술이다. 민생 예산은 민생 예산대로, 피해 보상은 피해 보상대로 풀어야 한다. 하나를 살리겠다며 다른 하나를 희생시키는 발상은 또 다른 자두연기일 뿐이다.

    파주시의회가 지금 해야 할 일은 ‘정지(停止)’가 아니라 ‘정치(政治)’다. 민생 예산을 멈춘 자리에 즉흥적 대안을 올려놓는 것이 아니라, 시민이 납득할 수 있는 일관된 원칙과 책임 있는 해법을 제시하는 것.

    정치는 방향을 만드는 일이다. 방향 없는 제동은 정치가 아니라 혼란이다. 남은 예산결산특별위원회와 본회의에서 의원들의 선택이 어디로 향할지, 시민들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 글쓴날 : [25-12-11 02:06]
    • 내종석 기자[pajuo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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