갚지 않아도 되는! 성매매를 조건으로 한 빚,
- 법무법인 한림 /변호사 형장우-
“성매매는 경제적 대가를 매개로 하여 경제적 약자인 성판매자의 신체와 인격을 지배하는 형태를 띠므로, 대등한 당사자 사이의 자유로운 거래 행위로 볼 수 없다”.
이 내용은 대법원과 함께 우리나라 사법질서의 최정점에 있는 헌법재판소가 2013년에 결정한 내용이다.
헌법재판소는 여기에 더해 “성매매를 단순히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직업이라거나, 인간의 성에 대한 본능을 충족하는 불가피한 수단의 하나로 보는 것은 성매매가 가진 비인간성과 폭력적, 착취적인 성격을 간과한 것”이라 일갈하고 있다.
법원 역시 이미 2006년에 “성매매가 쉽게 근절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이를 통하여 엄청난 이윤을 획득하고 있는 포주, 사채업자, 다방업주, 유흥업소업주 등 성매매 알선업자 등이 2중, 3중의 지독하고 혹독한 착취구조를 구축하고 성매매 여성들에 대하여 폭력을 행사하는 등 자신들의 소유물처럼 지배하면서 성매매여성이 그 굴레와 사슬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여 성매매의 특성을 정확히 선고한 바 있다.
이렇듯 성매매는 이를 통해 막대한 이익을 보려는 알선업자 등을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는 구조적 문제이며 필자가 15년 가량 성매매와 관련한 많은 민형사 사건을 진행해본 바로도 거의 대부분의 사건은 ‘돈’과 관련된 분쟁이다.
즉, 업주 등 알선업자가 성매매여성을 상대로 자신들이 대여해줬다는 돈을 반환하라거나, 여성과 작성해 놓은 공증서류를 무기로 여성의 통장을 압류한 후 역시 자신들이 빌려줬던 돈을 여성이 아직 갚지 못했으니 반환하라는 내용이다.
그런데, 현행 성매매처벌법 제10조는 “불법원인으로 인한 채권무효”라는 제목하에, 성매매 알선 등 행위를 한 사람, 성매매를 할 사람을 모집하거나 직업을 소개한 사람들이 성매매 여성에게 가지는 채권은 그 계약의 형식이나 명목에 관계없이 무효로 하고, 그런 채권을 양도하거나 채무를 인수한 경우 또한 마찬가지라고 규정하고 있다.
나아가, 대법원은 이미 2004년 “영리를 목적으로 윤락행위를 하도록 권유·유인·알선 또는 강요하거나 이에 협력하는 것은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되므로 그러한 행위를 하는 자가 영업상 관계있는 윤락행위를 하는 자에 대하여 가지는 채권은 계약의 형식에 관계없이 무효라고 보아야 한다”라고 판결하였고,
2013년에는 “성매매의 직접적 대가로서 제공한 경제적 이익 뿐만 아니라 성매매를 전제하고 지급하였거나 성매매와 관련성이 있는 경제적 이익이면 모두 불법원인급여에 해당하여 반환을 청구할 수 없다”라고 판시한 바 있다.
따라서, 업주가 성매매를 할 것을 조건으로 여성에게 빌려준 돈은 돌려받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필자가 성매매와 관련한 사건처리를 하기 시작한 초기, 적지 않게 놀랐던 것이 두 가지가 있었는데, 성매매처벌법과 대법원 판결은 위와 같은 돈은 갚지 않아도 된다고 규정되어 있음에도 여성들 쪽은 그와 같은 내용을 전혀 모르고 있다는 것이 그 하나였고, 위와 같은 내용을 알려주어도 빌린 돈이니 갚기는 해야 하는데 현재 여건이 안 된다는 대답을 하는 것이 다른 하나였다. 그만큼 여성들은 업주에 의해 요즘 말로 가스라이팅이 되어 있었고 자신들에게 적지 않은 돈을 제공해 준 것은 그 몇 배의 돈을 뽑아내기 위함이라는 인식이 약했다.
여기서 한 가지 더 강조하고 싶은 것은 성매매알선 등 행위를 한 사람에는 꼭 업주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성매매 장소를 제공한 사람, 성매매에 제공되는 것을 알면서 그런 돈을 제공한 (업주 아닌) 사람들도 모두 포함된다. 실제 필자가 진행했었던 사건들에는 업주는 아니지만 업주의 지인으로서 업주의 영업형태를 잘 알고 있는 사채업자(일수업자), 얼굴이나 가슴 성형을 알선하는 브로커, 흔히 ‘콜택시’(집과 업소사이에서 여성들을 자신의 차에 태워 이동시키는 것)라 불리는 차량 운전자 등이 여성을 상대로 자신들이 제공했던 돈을 반환하라는 사건이 상당했는바, 이런 사람들의 채권 역시 모두 불법원인급여에 해당하여 그런 돈은 반환할 필요가 없으며 혹여 이미 반환을 했다면 다시 돌려달라고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지난 주 강원도 평창의 어느 한적한 군법원을 다녀온 이야기를 하면서 글을 마무리하고자 하는데, 『여성들이 2차를 나가려고 해도 ‘우리 업소는 그런 업소가 아니다’라고 하며 이를 말렸다』는 원고(업주)가. 피고(여성)에게 제공한 돈은 그래서 순수히 빌려준 돈이니 이를 반환하라는 청구를 한 사건에서, 피고(여성)는 그 반대의 주장(여성들이 생리 등 몸이 아파 2차를 가기 어려움에도 참고 가라고 했던 사람이 원고였다)을 하면서 업소 생활 동안 원고로부터 받은 돈 만큼은 일을 해주었으니 더 이상 본인을 찾지 말아달라는 주장을 하는 사건이었다(물론 필자는 피고의 소송대리인이었다).
늘상 이런 재판에서는 여성이 자신이 일했던 업소에서의 생활을 판사 앞에서 자세하게 이야기하게 되는데, 많은 경우 기억하고 싶지 않은, 힘들었던 그 시기의 이야기를 하면서 눈물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재판을 마치고 혹여 원고와 마주칠까 염려하는 피고와 헤어지면서 ‘이렇게 아름답고 조용한 읍내가 밤이 되면 그런 것이 아니었나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모쪼록 사건이 잘 해결되어 피고가 원고의 재정적 압박으로부터 하루빨리 벗어났으면’하는 생각을 하였다.